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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나면… 전기 스위치 만지지 말고, 현관문 열어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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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안전 매뉴얼로 꼽히는 일본의 '도쿄방재' 보니

일본은 지자체마다 알찬 생존 매뉴얼을 펴낸다. 일명 '노란 책'이라 불리는 도쿄도(東京都) 매뉴얼 '도쿄 방재'가 특히 유명하다. 물에 쉽게 젖지 않는 가벼운 종이라, 338쪽 분량인데도 두께가 1㎝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도쿄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해 생존 요령을 일러준다.

집·사무실, 장소마다 행동 요령 다르다

체력을 아껴라
사망 1위 압사… 가구에 깔려도
비명 대신 물건으로 소리내야

지진이 발생하면 자택 거실에 있을 땐 탁자 밑에 들어간다. 침실에 있을 땐 이불로 머리를 감싸고 침대 위에 웅크리되, 조명등·창문 파편에 맞지 않도록 주의한다.

용변 보다 지진이 났을 땐, 일단 화장실 문을 열어젖혀야 문이 비틀려 갇히는 사태를 피할 수 있다.  

샤워하고 있을 땐, 대야를 뒤집어쓰고 빨리 나온다. 욕실은 깨지는 물건이 많아 위험하다. 지진 사망 원인 1위가 압사인 만큼 장롱·책장 같은 무거운 가구에 깔리지 않게 조심한다. 만약 깔리더라도 비명 지르는 건 금물이다.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니 체력을 섣불리 소모해선 안 된다. 고함 대신 손 닿는 곳에 있는 물건을 집어 벽·문짝을 두들겨서 "나 여기 갇혔다!"고 알린다.

사무실과 학교에선 책상 밑에 숨는다. 마트에 있을 땐 플라스틱 장바구니를 헬멧처럼 쓰고 가까운 층계참(층계와 층계 사이)·기둥 옆으로 피한다. 극장에선 앞·뒷줄 좌석 사이에 웅크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있을 땐 모든 층의 단추를 다 눌러서 맨 먼저 열린 층에 내린다. 거리에서 지진이 나면 옷·가방으로 머리를 감싸고, 낙하물·건물 붕괴에 주의하며 공원처럼 툭 터진 곳으로 간다.

차를 몰고 있다면

차 열쇠는 꽂아두고 대피하라
땅 흔들리면 감속뒤 차 세우고
열쇠 놔둬야 구조차량 길 안 막아

비상등을 켠 채 천천히 감속해 도로변에 정차한 뒤 진동이 멎길 기다린다. 차를 버리고 대피하는 상황이 오면, 반드시 열쇠를 꽂아두고 가도록 한다. 그래야 구조 차량이 출동할 때 내 차가 길을 막는 사태를 피할 수 있다. 터널에 있을 땐 붕괴·낙하물 위험이 큰 공간이므로, 짧은 터널이라면 속도를 줄여서 출구를 향해 계속 전진해 빠져나오고, 긴 터널이라면 차를 벽에 바짝 붙여 세운 뒤 열쇠를 꽂아둔 상태로 자기 몸만 걸어서 터널 밖으로 나온다.

평소엔 대비하고, 재난 땐 이웃 도와라

4인 가족 물 3일분은 2L생수 12병
쓰고 버리는 1회용 변기는 30개
비상용품 30개 품목 구체적 제시

맨발이나 양말 바람이라면 날카로운 것을 밟아서 다치지 않게 신발부터 신는다. 갇히지 않도록 방문·현관문을 열어놓는다. 전력차단기를 내리고 가스 밸브를 잠근 뒤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으로 대피한다. 연기가 날 때는 스카프 등으로 목과 코를 가리고 낮은 자세로 포복하듯 걷는다. 대피하다가 다친 이웃을 보면 최대한 돕는다.

'도쿄 방재'는 지진 발생 시 막연하게 "비상용품을 상비하라"고 하지 않고, 약 30개 품목을 구체적으로 찍어준다. 그냥 '생수 3일분'이 아니라 '4인 가족 기준 2L 생수 12병'이라고 쓰여 있다. 딸 있는 집은 생리대 60매, 눈 나쁜 사람은 1회용 콘택트렌즈 1개월분, 고령자는 보청기 전지 6개를 갖춰놓는 게 좋다. 휴대전화·인터넷·현금인출기가 먹통이 되는 상황을 감안해 며칠 버틸 현금도 뽑아놓는다.

서울 vs 도쿄 … 경주 vs 교토

도쿄도는 '노란 책' 외에도 여러 종류의 지진 매뉴얼을 펴냈다. 도쿄는 고층 건물이 많아 지진 발생과 동시에 도시를 봉쇄하고 주민들에게 도쿄를 떠나도록 권고한다. 지진 매뉴얼 중 하나는 차를 몰고 외곽으로 대피할 때 지금 사는 동네에 따라 어떤 루트로 어느 피난소에 가는 게 가장 빠른지, 혼잡이 예상되는 구간은 어딘지 지도에 상세히 표시했다.

고층 건물이 거의 없고 문화재가 많은 교토(京都)는 도쿄와 매뉴얼이 전혀 달랐다. '일반 주택'과 '문화재' 보호가 초점이다. 교토시는 문화재가 지진·화재·수해를 당했을 때를 대비해 평소 지역 관광 가이드와 택시·관광버스 운전기사에게 일정 시간 문화재 보호 교육을 실시하고, 만약의 사태에 미술품이나 불상을 어디에 옮겨 보관할지 정해 사전 훈련을 반복한다.

반면 서울소방재난본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지진 대피 요령'은 일반적인 지진 상황만 있지, 서울이라는 장소에서 시간대별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1000만 서울 시민이 한꺼번에 길거리로 쏟아질 경우 어떻게 될지, 연립주택 사는 사람과 초고층 아파트 사는 사람이 각각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무 정보가 없었다. 경주시의 경우, 교토와 비교하고 말 것도 없이 매뉴얼에 문화재 보호 항목 자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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