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아이들에게조차 공평한 놀이 기회 제공하는 미국 위험은 있지만 자연에서 자유롭게…모험놀이터의 천국 일본 행정이 중장기계획으로 놀이정책 추진하는 영국과 아일랜드 앞서 살펴본 대로 아동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해주자는 논의가 국제적으로 나온 것은 1922년 영국의 국제아동기금단체연합이 ‘세계아동헌장’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이후 여러 회의에서 아동의 권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과정을 거쳐, 1989년 18세 미만 아동의 모든 권리를 담은 ‘아동권리협약’이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 | | 1989년 만들어진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내용-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자료에서 발췌. |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196개국(2016년 현재)이 협약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협약에는 이 세상 어린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생존·보호·발달·참여의 권리를 담았다. 각 나라가 아동의 놀이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도 처음 기재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의 지지를 받은 범세계적 국제인권조약으로서,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아동의 인권분야에서 새 지평을 연 협약으로 평가받고 있다. ▲ 영국…놀이가 국가 주요 정책으로 영국은 2007년 아이들을 위한 계획(Children’s Plan)을 만들어 국가적 차원에서 아동의 놀이를 정책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담긴 ‘Play for a change’에는 그동안의 놀이가 놀이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여겨졌다는 자성이 담겼다. 놀이와 관련한 정책을 만들 때에는 ‘그것이 과연 아동을 놀게 할 것인가’를 평가해야지, ‘놀이를 통해 다른 어떤 것을 성취하게 할 것인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도 갖고 있다. 즉, 놀이의 무목적성, 자유로움, 자기주도성을 강조한다. 영국은 놀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 주거지역 주변에 몰입을 유도하는 놀이터와 공원을 새로 만들고 기존 놀이 시설을 정비하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다. 놀이터를 만들 때에는 아동들이 놀이터 설계안을 최종 확정하게 한다. 또, 놀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아동 놀이 전문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더불어 8월 첫째 수요일은 ‘놀이의 날(Play day)’로 운영하고 있다. 이날 영국 전역에서는 어린이와 그 가족을 위한 놀이 행사가 진행된다. 2012년에는 영국의 시민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가 ‘12세가 되기 전에 해야 할 50가지’를 발표했다. 나무에 오르기, 비 맞으며 뛰어다니기, 진흙으로 파이 만들기, 바위 사이에 사는 괴상한 생물 조사하기, 성냥 없이 불 피우기…. 실외 놀이를 권장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영국 정부의 놀이 정책은 아동 정책의 일부로만 다루던 놀이를 중앙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로 설정하였고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점에서 한국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아일랜드…레크리에이션 요소 강조 아일랜드는 우리의 자유학기제에 해당하는 ‘전환학년제(Transiton year, 1974)’를 무려 42년 전에 도입했다. 중학교 졸업 후 고교 과정에 들어가기 전 1년간 정규 교과가 아닌 통합적인 놀이를 하는 제도다. | | | 아일랜드는 국가적으로 '놀이의 날'을 열고 있다. 사진은 아일랜드 더블린 시에서 2016년 6월 셋째주 일요일에 Merrion Squre Park에서 열린 행사 모습-더블린 시청 홈페이지에서 발췌. |
도입 당시 아일랜드 학생들은 지금의 한국 학생들만큼 과도한 시험 압박을 받고 있었다. 교육부 장관이었던 리처드 버크(Richard Burke)가 기존의 학교 시스템을 변화시키지 않고 아동의 전인적인 측면을 균형적으로 발달시킬 수 없다며 전환학년제를 제안했다. 아일랜드의 아동·청소년 정책은 소아 비만 문제를 해결하고 인격적인 성장을 위한 취지로 통합적인 놀이와 레크리에이션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 2011년 아일랜드 아동·청소년부(Ministry for Children and Youth Affairs)는 ‘레크리에이션은 아동·청소년의 삶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며 아동·청소년 카페, 아동·청소년 프로젝트, 놀이 시설에 대한 투자를 발표했다. 아일랜드 역시 영국과 같이 ‘놀이의 날(National Play Day)’이라는 국가적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날이 되면 지방자치단체는 아동과 가족이 그들의 지역에서 놀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축구, 미니올림픽, 장애물 코스, 느린 사이클 경주, 페널티 승부차기 등 전통적인 바깥놀이가 대부분이다. 아일랜드의 더블린 시(市)의 경우, 시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추진 중인 ‘더블린시티 플레이 플랜 2012-2017’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 정책은 어린이 친화적이고,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놀 권리’를 즐길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일본…놀이터에 대한 선입견을 깨라 일본은 놀이터에 대한 선입관을 깨뜨린 나라다. 소위 ‘모험놀이터(Play Park)’라는, 다소 위험요소가 있는 놀이터를 통해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면서 책임감을 키운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일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266곳이 있고, 전국 각지에서 모험놀이터와 관련해 활동 중인 단체가 400여개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 도시화로 인간관계가 약화되고 놀이 환경이 쇠퇴하면서 아동의 놀이 부족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뜻을 모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관련 활동이 추진됐고 1979년 최초의 상설 모험놀이터가 행정·시민 협동운영체제로 도쿄 세타가야(世田谷)에 만들어졌다. 지난 5월 ‘어린이놀이터국제심포지엄’(2016, 순천시 개최)에서 만난 일본모험놀이터만들기협회 아마노 히데아키 총괄이사에 따르면, 최초의 상설 모험놀이터가 세워진 세타가야 구에는 현재 4군데의 상설 모험놀이터가 있다. 모험 놀이터에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네, 시소, 미끄럼틀과 같은 상설 놀이기구가 없다. 대신 나무, 돌, 흙, 숲 같은 자연이 있고 이 곳에서 아이들은 불놀이, 물놀이, 나무타기를 한다. 때문에 다소 위험요소가 있어 대체로 주민이 운영 주체가 된다. 행정은 사고 발생 시 책임추궁을 감당할 수 없고, 자유로운 활동도 보장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모험 놀이터의 가장 큰 특징은 ‘플레이리더(Play Leader)’가 있다는 점이다. 플레이리더는 아이들이 위험이 따르는 놀이를 할 때 조력자로 도움을 주며 최대한 아동의 자유로운 활동을 지원한다. 놀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모험 놀이터는 놀이와 바깥 활동의 기능에 더해 지역사회의 보육기능과 커뮤니티 활성화 기능 등의 측면에서도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주목한 지방자치단체들은 주민들과 함께 모험 놀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 미국…놀이의 기회는 공평하게 미국의 놀이 공간 프로그램(Playspace Program)은 홈리스(homeless, 집이 없는) 쉼터에서 지내는 아동이 발달에 필요한 놀이를 놓치지 않도록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1990년대 시작됐다. 지역별로 150여 개 이상의 장소에서 놀이 공간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는 아동의 발달과 교육별 단계에 맞춘 책과 장난감 등의 물품이 구비돼 있다. 놀이 공간 프로그램은 놀이 공간 리더(Playspace Activity Leaders; PALs)라고 불리는 훈련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된다. 놀이 공간 리더는 아동에 대한 관심과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18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일정한 교육을 거쳐 쉼터 아동의 나이에 적합한 활동을 함께한다. 미국의 놀이 공간 프로그램는 아동의 발달에 놀이가 중요하다는 믿음과, 놀이의 기회는 홈리스 쉼터에 있는, 즉 삶의 위기에 처한 아동들에게조차 공평하게 제공돼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